백자(朝鮮 白磁)
조선백자란 조선왕조시대에 만들어진 백자를 말한다. 물론 고려시대부터 백자가 만들어지긴 하였지만 고려의 영향을 받은 흔적이 뚜렷하지 않고 조선백자는 명나라백자의 영향을 받아 발전한 것으로 보아진다.
조선초기는 고려청자와 분청사기의 영향으로 퇴보된 청자나 분청
Ⅰ.머릿말
일반인들의 동의 여부와는 관계 없이 많은 미술사가들은 우리나라가 공예의 왕국이라는 민족적 자부심을 갖고 있다. 삼국시대의 금속공예, 고려의 상감청자와 나전 칠기, 조선시대의 목공예와 백자는 모두 제각기 한국 미술사의 빛나는 한 장을 차지하고 있다.
우리의 공예는 중국, 일본
청자가 분청사기로, 청자가 새롭게 변모된 자기이다. 분청사기는 소박하고도 대중적이며 친근감이 풍기는 정겨운 자기이다. 조선조에 들어서면서 분청사기는 백자와 함께 뿌리를 내리기 시작해 백자를 제치고 왕성하다가 임진왜란을 계기로 잔취를 감추게 되면서 백자 본위로 발전되었다.
1) 분청사
1. 청자(靑磁)
청자란 말 그대로 청색 자기라고 할 수 있겠으나 청색이라고만 표현하기에는 매우 막연한 표현이 된다. 서긍의 『高麗圖經』에는 “도기로서 빛깔이 푸른 것을 고려 사람들은 비색(翡色)이라고 한다.” 라는 말이 있는데, 이 말에서 청자를 따온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고려도경의 인용한
Ⅰ. 고려청자청자는 중국에서 처음 만들어졌다. 그 중요한 원인은 옥(玉)과 관계되어 있다. 중국에서 옥은 군자(君子)를 상징하고 부귀와 죽은 후의 내세를 보장해주는 신앙적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이런 이유로 많은 중국인들이 옥을 지니고자 했는데 원하는 사람은 많았지만 옥의 생산은 한정되어
Ⅰ. 도자기 상감청자
고려 청자의 대명사인 상감(象嵌)청자는 대체로 12세기를 전후하여 만들어졌다는 설이 있으나, 북한의 발굴자료에 의하면 11세기 초 개성 진봉리에서 상감청자가 나왔다는 보고서가 있어 늦어도 11세기부터 만들어졌을 가능성이 있다.
상감기법은 문양을 파고 움푹이 패인 부분
청자의 종류 -
순청자(純靑磁) - 청자 일색의 무문·양각·음각·상형·투각문 등의 청자로서 상감이나 화문청자는 제외된다.
상감청자(象嵌靑磁) - 그릇이 마르기 전 무늬를 선각(線刻)하고 백토나 흑토로 메워 초벌구이 한 다음 유약을 바르고 구운 것인데 간혹 진사(辰砂=酸化銅)를 섞어서 밝은
청자는 그 화려함과 세련됨으로 많은 걸작을 남기고 고려시대 후기를 정점으로 점차 사라져 가게 된다.
세계 도자기의 발전을 보면 토기에서 도기/석기로, 도기/석기에서 청자로, 청자에서 백자로 발전되었다. 청자에서 백자로 변화되는 과정에서 우리나라에서는 15세기 초 고려 말 조선 전기에 분청사
청자와 조선의 백자가 그 대상이었다. ‘고려의 청자는 중국 본토에서도 금속에나 적용하던 상감기술을 청자에 적용하여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청자를 만들었다.’ ‘조선의 백자는 고려청자에 비해 소박하고, 단아한, 여백의 미를 강조한 아름다운 도자기다.’ 등의 이야기를 통해서 마치 청자는 오
고려청자가 차차 발달하여 상감청자를 만들어 낸 것은 분명하나 이것이 언제부터, 어떠한 동기로 만들기 시작하였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지금까지 발견된 유물들을 통해 어느 정도 짐작은 할 수 있을 것이다.
먼저 『고려도경』에서 청자의 발생지인 중국 사람이 고려청자를 보고 칭찬을 아끼